근현대사를 살펴보려면
미국의 역사가 빠질 수 없죠.
세계1차대전부터 시작하여 2차대전을
끝으로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
냉전시대도 끝내고 팍스아메리카
시대를 열은 미국
그 중 닉슨 미국 대통령 (1969~1974) 재임기간 일어난
3가지 큰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글 엮어보았습니다.
베트남전쟁 중 당선되어 세계 경제계에 크나큰
사건인 닉슨쇼크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퇴임하기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베트남 전쟁 (1960년~1975년)
프랑스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베트남은 독립을 위한 운동이
활발히 진행이 되었죠. 1960년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이 세계정세를 좌지우지했던 냉전
시대였죠. 그래서 세계곳곳에서 두 국가의 세력다툼이
많았는데 그 중 한곳이 베트남이 된거죠.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과 북베트남이 합심하여 베트남의
완전 독립을 요구하는 가운데 남베트남 정부군과 미국군이
합쳐 1960부터 시작된 전행 월남전이라 불리는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었죠.
한반도가 일본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북한은
소련이 남한은 친미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 전쟁이라는 참사가 있어났듯이
베트남에서도 베트남 남부는 친미정권이
북부는 고안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의
갈등이 시작된거죠.
일명 베트콩이라 하여 북베트남군의
게릴라식 전쟁은 미군과의 전쟁을
장기화시켰고 대한민국도 베트남전에
파병하면서 지금도 월남전 전사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죠.
미군 다음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하여 30만병이 넘는
전투병력에서 1만6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베트남 전쟁 중에 미국에선 리차드 닉슨이
1968년에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죠.
전쟁에 대한 여론도 심상치않고 베트콩의
전술에 매번 미군의 희생자도 늘어나는 와중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 철수를 단행하고
1973년에 최종적으로 모든 미군이 철수하였죠.
이후 1975년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에 대한
공세를 지속하여 사이공을 점령하고
1976년엔 베트남 사회주의 공산국으로
통일을 이루었죠. 결국 미군의
개입은 실펴로 돌아선거죠.
닉슨 쇼크
1971년 8월 닉슨대통령은 괌에서 충격적인 발표를
단행했죠. 내용인즉,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하고
수입 과징금 10%를 실시한다는 주요 골자였죠.
이로 인해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전환되고
더이상 달러는 금과 교환되는 지폐가 아니게
되었는데 이는 세계 경제에 크나큰 충격을
안겨주었죠. 특히 수출 비중이 큰 일본 한국
독일 등에 엄청난 뉴스였죠.
닉슨 쇼크에 대한 배경으로 위에서 살펴본 베트남
전쟁이 한몫을 하였죠. 1960년대 말부터 미국의
대외 원조 및 군사비 지출이 급증하면서 경제력이
많이 저하되었죠. 이런 와중에 달러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니 여타 국가에서는 달러를
미국이 보유한 금으로 바꾸려는 수요가 늘게되고
이로 인해 미 금 보유량은 급감했죠.
결국 달러화 방어를 위해 닉슨 쇼크를 단행하고
더이상 달러와 금을 교환하는 기존의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를 가져왔죠.
1944년 7월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연동시키자는
브렌튼우즈체제가 닉슨 쇼크로 더이상
유효한 체제가 아니게되었습니다.
과거 달러지페를 보면 금확인서라 하여
금 동전으로 자유롭게 교환하는데 쓰였는데
더이상 이런 문구가 없어지게 된거죠.
워터게이트 사건 (Watergate Affair)
이 사건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닉슨 대통령이 재선을 위해
상대방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에 대한 도청 등의 음모를
숨기려다 재선후에 결국 사임한 사건이죠.
1974년 닉슨이 사퇴하고 부통령인 G,포드가 대통령으로
임명되면서 이 사건은 일달락 났는데
미국 정가와 사회를 뒤흔들었던 아직도
가끔 회상되는 사건이었죠.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 대통령까지 지낸다면
범상치 않은 인물이고 그 중 미국인들이
존경하는 대통령들은 길이길이 역사에
남는데 닉슨은 베트남전 평화 협상에 대한
진전, 중국과의 국교 수립 등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불명예
퇴임한 대통령으로 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미국 금주령이 만들어낸 마피아 알카포네 ?! 교각살우 뜻 (0) | 2015.0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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